27/05/2016

Arahmaiani (Indonesia) – Ten Questions on Democracy

Only available in 영어 and 일본어.

31/01/2016

인도네시아 리포트 제 1부 서양형 ‘데모크라시’와 촌락형 ‘무랴와라’ 사이의 모순

어려운 시찰 과제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와 현대 예술 (특히 신체를 활용한 예술)의 관련성에 대한 조사>. 조금이라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한 줄을 읽고 이미 이 안에 다양한 개념적 마찰이 포함되어 있음을 눈치챘으리라. 우선 인도네시아라는 세계 제4위의 인구를 가진 다민족 도서 국가의 정치적 상황을 일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는 사실. 두 번째로,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서양의 개념이 과거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던 나라에 있어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제외하는가라는 문제. 그리고 세 번째, 역시 서양에서 수입해온 개념이자 특히 수하르토(Suharto:1921-2008)의 군사독재 이후 남용되고 악용되어 온 정치적 논리인 민주주의에 대해 일반 시민들과 논의할 때 어떤 지역적 관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난제. 첫 번째의 다양성부터 설명해보기로 하자. 흔히 말하듯, 이 나라는 리스본부터 이스탄불의 직선거리에 필적하는 동서 5000킬로미터에 분포하는 크고 작은 17,508개의 섬들로 구성되어있다. 그 가운데 약 6000개가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다. 2억 3천만 명이나 되는 국민은 약 300개의 다른 민족집단으로 구성되며, 각 민족의 사용 언어도 200 내지 400가지나 존재한다. 종교도 복잡하다. 국민의 약 9할이 이슬람을 믿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이지만, 인류학자 클립포드 기어츠가 지적하듯, 무슬림이라고 하더라도 애니미즘, 힌두, 불교적 요소를 느슨하게 융합하는 ‘아반간(abangan)’부터 엄격한 종교 체계를 유지한 아체주에 다수 거주하는 ‘산뜨리(santri)’까지 교의의 농도도 각기 다르다. 이처럼 민족적, 종교적, 언어적으로 다양한 국가를 하나로 아우르기 위해, 오가와 타다시가 『인도네시아 – 다민족 국가의 모색』 (1993)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950년의 독립 이후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나라로서 한데 모으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에 매료되어 이 땅에서 눈을 감은 베네딕트 앤더슨 의 명저 『상상의 공동체』(1983)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근본적으로 다른 민족을 하나의 국민으로 취급하는 담론은 정치적인 픽션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자하사 인도네시아어로 ‘정치’는 ‘폴리틱(politic)’이라는 외래어로 번역되어 국정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내정적 억압, 역사의 날조, 권력의 행사 등과 연관된 좋지 않은 명사,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활자 상의 조사 단계에서 이미 인도네시아의 복잡함, 다양함, 광대함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건국의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 Continue reading 인도네시아 리포트 제 1부 서양형 ‘데모크라시’와 촌락형 ‘무랴와라’ 사이의 모순

29/01/2016

인도네시아 리포트 제 2부 현재진행형의 1965년과 ‘라꺗’의 권리

상황은 수카르노 퇴진으로 인해 더욱더 악화된다. 1965년 9월 30일 당시 육군 대신 겸 육군참모장이었던 수카르노는 군사 쿠데타를 계획 실행하여 이듬해 2월에 제2대 인도네시아 대통령 자리에 취임한다. 그는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카르노의 지지 기반인 인도네시아 공산당원과 그 동조자라 알려진 중화계 민족, 인텔리 층, 노동조합의 멤버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이 숙청 작업을 서양 국가들이 뒤에서 돕고 있었다. 그 결과, 수카르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소위 ‘공산당원’을 학살한다. 2016년 현재에도 희생자의 유족들은 정치 중추부에서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리더들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중화계 민족은 1998년 5월에 발발한 중국인 배척운동 당시 또 한 번의 학살과 강간을 겪었기 때문에 역사적 비극을 과거가 아닌 현재형의 폭력으로 경험하고 있다. ‘1965’라는 해는 인도네시아의 현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 용어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전국적인 대학살에 대해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21세기의 5대 학살’ 가운데 하나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죠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에 의한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이다. 2014년에 처음으로 국군 출신이 아닌 조코 위도도(Joko Widodo)가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실이 은폐되고 개찬되어 왔다. Ruangrupa 소속의 비디오 아티스트, 마할디카 유다(Mahardika Yudha)씨와 앞에서 소개한 아라흐마이아니 씨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지적하듯, 1965년의 비극은 아직도 많은 교육 기관에서 왜곡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교사들은 ‘잔학한 공산당원을 응징하여 민주주의(데모크라시)를 확대해주신 수카르트 군사정권의 영웅들에게 감사합시다’라는 아름다운 픽션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데모크라시’라는 외래어에 혐오감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일본인에게는 ‘민주주의란 좋은 것이다’라는 상당히 나이브한 기성 개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인인 필자도 처음에는 다른 뜻 없이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기능하고 있습니까?’라고 그 지역의 아티스트들에게 질문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실례가 되는 질문이다. 많은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하면서 쓴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노’라는 비언어적인 대답을 동시에 한다. 왜냐하면 이 ‘예스’에는 모순된 두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나라에는 정치적 제압에 의해 이루어낸 데모크라시가 있다. 그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치 연구자인 혼나 준이 『민주화의 패러독스 –인도네시아에서 보는 아시아 정치의 심층』 (2013)에서 상세하게 논하고 … Continue reading 인도네시아 리포트 제 2부 현재진행형의 1965년과 ‘라꺗’의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