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016

서울, 개발의 열풍에 저항하는 새로운 장의 생성

 
[:en]Haeju Kim[:ja]キム・ヘージュ[:]

Haeju Kim

independent curator and writer based in Seoul. »more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이다. 빠르게 변화한다는 사실은 다른 아시아의 도시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50여 년간 서울은 시간을 재촉해왔다. 산업과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성장의 그늘도 깊었다. 전후 회복과 경제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윤리와 철학은 상대적으로 빈곤해졌고, 그 정신적 가난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스무 살에 서울로 이주했다. 처음은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극장과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버스를 타고 도시의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화려한 거리들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서울의 속도가 나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에 비해 숨 가쁘고 벅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만큼 국가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던 터라 대학의 분위기도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로 서울에 올라온 지 일년 반만에 일년 간 휴학을 하고 서울을 떠나있기도 했다.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은 나에게 여전히 애증의 도시이다. 서울은 강과 산을 파내며 커져갔지만, 남아 있는 자연의 풍경은 여전히 위로를 준다. 가파른 스카이라인이 사이로 웅장한 산의 모습이 보이는 도시는 드물다. 사려 없이 진행되는 일들과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사고도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이 다시금 기대를 갖게 한다. 이렇게 실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늘도 서울 살이가 이어진다.

여기에 소개하는 한국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나 프로젝트들도2009년에서 2011년 사이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소개된 것들이다. 서울은 대상이며 동시에 주제이다. 이 시기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 아래 서울을 “디자인”하려던 시장과 전국토를 다시금 개발 열풍으로 몰고 가려던 사업가 출신의 대통령이 4대강 개발 사업을 실행하던 시기였다. 한강 르네상스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당시 서울 시장이던 오세훈이 약 5940억의 비용을 들여 진행했던 한강변 개발 사업의 명칭이며, 4대강 개발 사업은 이명박 정부(2008.2 ~ 2013.2)의 핵심사업으로 총 22조 원을 들여 수자원 관리를 명목으로 금강, 낙동강, 영산강, 한강 일대를 재정비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였으며 2013년 초 완료되었다. 이후 실효성 논란과 환경 파괴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던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것도 2009년이다. 도심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부동산 투기의 끝물을 타고 서울의 집값이 출렁였고, 오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들은 격렬히 저항하거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다. 무대를 바꾼다는 것(transforming scene)은 나의 익숙한 공간에 질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가들은 ‘오늘날 서울에서의 삶은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성장과 개발을 모토로 달려온 “아파트 공화국”의 대표주자인 서울의 그늘에서 다른 장, 다른 무대를 시도한다.

개발의 논리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실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다시-하기(Re-doing democracy)”라는 문장은 마치 민주주의를 이미 상실된 어떤 것, 사라져 버린 어떤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국가의 체제로서 민주주의라는 말은 헌법상 명시되어 있지만, 식상해져 버렸다. 민주주의는 다시 구체적인 형태는 드러낼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은 이를 매개할 수 있을까? “다시-하기(re-doing)”는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먼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실천 가능한 어떤 것으로 느낄 수 있게 하여 그 유효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작업들은 일상의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를 민주화”한다. 예술의 형식 실험 안에 갇히지 않고 거리에서, 투쟁의 장소에서, 가까운 도시의 어딘가에서 노래와 전파, 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 사이를 떠다닌다.

1 두리반 철거 투쟁 현장과 자립음악생산조합
(Self Reliant Music Producer’s association with Duriban), 2010-2011

ドゥリバン③movie_image

ドゥリバン①duriban_feb2010_courtesy_Pressian_Choi Hyeong-Rak

홍익대학교 인근에 위치했던 칼국수집 두리반은 2009년 12월 인근 지역 개발을 시행하는 건설사 측의 용역에 의해 그들의 터전을 뺏겼다. 이주비 명목으로 고작 300만 원을 받고 쫓겨난 가게 주인 부부는 삶의 기반을 되찾기 위해 용역들이 쳐놓은 철제 펜스를 뜯고 들어가 철거 반대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몇몇 음악가들이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2010년 2월부터 두리반에서 매주 토요일 ‘토요 자립음악회’라는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강제철거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이어가던 두리반에 독립적인 공연의 공간이 필요했던 음악가들이 함께 연대했고 뜻에 동참하는 음악가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들 음악가들은 두리반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홍대 앞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홍대 인근은 1990년대 미술대학생을 중심으로 작업실 등이 위치하면서 공연장, 클럽 등이 생겨나 소위 한국 인디문화의 거점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점점 상권으로 변모되었고,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기존에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나 음악가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었다. 두리반의 상황이 음악가들에게 투사되면서 어떻게 자립하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조합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독립적인 음악 생산의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음악가들뿐 아니라 음악가들을 지원해주는 소비자들도 잠재적인 음악의 생산자로서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2011년 4월 발기인 대회와 8월 첫 총회 이후 자립음악생산조합은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약 250여 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자본과 국가 내지는 행정기관의 간섭을 가능한 줄이고, 소규모 생산자들이 연대하여 스스로가 활동할 수 있는 장(field)을 구축한/구축하는 것을 우리는 자립이라 부른다.” (웹 사이트의 소개 글 중에서)

한편 음악가들이 연대한 두리반의 투쟁현장은 2010년 5월 1일 ‘뉴타운 컬쳐 파티 [51+1]’라는 행사의 기획으로 이뤄졌다. 낮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약 61팀이 공연했고 2,500명의 관객이 참여하여 두리반의 상황을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농성 537일 만에 두리반은 건설사로부터 적절한 배상금과 인근 지역에서의 영업재개를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를 받아냈다. 이 같은 “문화 시위”는 명동의 카페 마리, 이태원의 테이크아웃드로잉, 그리고 최근 서대문구 옥바라지 골목에서 강제 이주에 반발하는 유사한 시위, 운동으로 진행되었다.

*참고(references)
자립음악생산조합 홈페이지: http://Jaripmusic.org
뉴타운 컬쳐파티(2011)는 두리반과 음악가들이 함께한 투쟁을 기록한 정용택(JEONG Yong-Taek) 감독의 다큐멘러티이다. 다음은 영화의 트레일러 영상이다.

2 옥인콜렉티브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2009-2010) & 옥인 인터넷 라디오 [Studio+82]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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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는 서울시 종로구의 옥인아파트 재개발 지역에서 시작한 아티스트 콜렉티브이다. 2009년 7월 강제 철거를 앞둔 서울 종로구의 옥인 아파트에 살던 동료 작가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옥인아파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세입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동시에 떠난 주민들이 남긴 흔적과 지역의 역사성에 대한 탐사가 포함된 프로젝트였다. <옥인동 바캉스(Okin-dong Vacance)>는 아파트의 옥상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지역 주민들이 함께 한 1박 2일의 프로그램이었다. 폐허가 되어가는 옥인 아파트 내부 공간을 투어하고 작가들의 작업을 상영하며 주민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대화하는 작은 공동체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옥인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지역의 탐사, 옥인 아파트에서의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이 약 1년간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콜렉티브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멤버의 변화를 거쳐 현재 김화용(Hwayong Kim), 이정민(Jeongmin Yi), 진시우(Shiu Jin) 세 명의 멤버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 [studio +82] 는 2010년 9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방송 프로젝트이다. [Studio +82]는 도시의 균열지점에 서있는 “또 다른 옥인들”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송출한다. 방송은 옥인 콜렉티브 주변의 이웃들, 작가들, 이론가, 사회 운동가 등 다양한 협업자들과 함께 만들어지는데, 그 몇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다.

오픈 컷_돈 없이 가치가 교환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권이란 무엇인가? 김현미(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옥인에서 소녀시대까지_게스트: 조한(홍익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패닉룸-당신이 원하신다면_게스트: 김동림, 임소연(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게릴라 형식의 이 방송은 장소를 바꾸어가며 실행되고 그 내용은 인터넷 아카이브에 쌓인다. 2011년 부산 시립미술관의 기획전의 일환으로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튜디오가 진행되었고, 2012년 두산 갤러리에서 <바닥의 노래를 들어라( Hear the ground sing)>라는 설치 겸 라디오 스튜디오가 이어졌다. 여기서 바닥이란 “구조와 주체가 대립하고 싸우며 역동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장의 개념’에 가깝다. “옥인 아파트에서부터 시작된 예술과 생계라는 난제를 위해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 예술 생산자들의 입장을 같은 미술인, 음악인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앞서 언급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멤버 한받(Han Vahd)과 박다함(Daham Park)도 <바닥의 노래를 들어라>에 참여했다.

http://okin.cc/radio

3 임민욱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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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9, 30일
조명, 사운드 퍼포먼스 / 장소 특정적 작업/ 공연
2009년 국제 다원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

퍼포먼스 비디오 도큐멘테이션, 2009
HD 사운드 비디오 프로젝션
1 채널 버전_46분 13초 / 3채널 버전_11분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작업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묻힌 이야기들을 소환한 퍼포먼스이다. 2009년 3월 29일과 3월 30일 양일간 페스티벌 봄의 일환으로 소개되었고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으로도 남아있다. 관객들은 저녁 9시 약 90분간 한강을 오가는 유람선에 그 이동의 여정에 따라 한강과 그 주변을 무대로 한 몇 가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배가 출항하면 선내 방송을 통해 선장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그의 회고 속에 한강에 대한 기억, 서울에 대한 추억이 자리한다. 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지나간다. 그들은 “삽질, 삽질, 또 다른 희생, 또 다른 희생”등의 구호를 소리친다. 손에는 거울 형태의 반사판을 들고 유람선이 발하는 서치라이트의 빛을 거부한다. 개발로 인해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구호는 싯구처럼 귓전에 남고 거울을 든 사람들의 움직임은 저항의 카드 섹션처럼 보인다. 한강에 떠 있는 한 섬에서는 한 쌍의 연인이 낭만적인 사랑의 장면을 연출한다. 그들은 작은 불꽃을 터트리며 밝게 뛰어다니지만 무전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목소리는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들만의 공간을 갖지 못해 계속 도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토로한다. 그리고 마지막 목소리는 국가로부터 보호관찰대상자로 지정된 정치적 비전향자의 목소리이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는 “아닌 것은 아니오. 싫은 것은 싫어요. 이렇게 말하며 살고 싶어요. 국가 권력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S.O.S를 치고 있어요. ” 라고 전한다. 이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마치 우연히 잡힌 라디오의 전파처럼 유람선이 비치는 불빛 속에서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 웅크리고 있는 이토록 다양한 개인의 사연과 억눌린 주체성의 단면을 드러낸다. 마치 영화와 같은 90분에 포함된 것은 개별적 이야기들만은 아니었다. 한강변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 마치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만 같은 공사의 현장들, 그리고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다리들과 그 위를 오가는 분주한 자동차들, 이 같은 서울의 풍경 역시 S.O.S라는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임민욱 작가 웹사이트
http://www.minoukl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