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 파질에게 물어본 민주주의에 관련한 10가지 질문 (말레이시아)
10/01/2016이름과 직업을 가르쳐 주세요. 파미 파질 (Fahmi Fadzil). 작가, 퍼포머, 정치가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언젠가부터 예술과 정치에 대해 동시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경이었던가요, 그 무렵 쿠알라룸푸르의 대학에서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해 연출가인 마크 테 (Mark Teh)를 만나 그와 아트 컬렉티브를 결성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학교의 밖에서는 ‘레포르마시 (Reformacy: 개혁) 운동’이 발발했습니다. 당시의 부총리 겸 재무상인 안와르 이브라힘 (Anwar Ibrahim)이 정치 부패에 분개하여 같은 불만을 가진 약 10만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마하티르 (Mahathir Mohamad)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내를 행진했습니다. 이 운동을 목격한 저는 우선 제 안에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을 토해내기 위해 몇 편이나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실시된 총선거에 자원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선거권도 갖지 못한 나이였지만요. 그렇지만 그 후 저는 정치와도 예술과도 관계가 없는, 화학공학의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9.11을 목격하게 됩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무지각하게 그 후의 미국의 방침을 결정하는 듯한 미국의 친구들의 언동을 보고… 정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 가운데에 제일 깊이 생각했던 문제는 ‘자신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런 일들로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국 후 화학공학의 지식을 살려 마츠시타 공업 주식회사에 취직했음에도 2개월 정도밖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웃음).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와양 쿨릿 (Wayang Kulit그림자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토착문화가 남아 있는 켈란탄 주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술의 사회 공헌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예술 활동에서 멀어진다면 ‘ 그건 어떤 때일까’라고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항상 모국의 사람들을 위해 창작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제가 만들어 내는 시나 와양 쿨릿에서, 어떠한 정치적인 이유로 관객이 없어지게 된다면…두 가지의 선택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서 관객에게 다가서는 것. 다른 하나는 관객을 되찾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정치 참여를 시작하는 것.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제 예술 관계자 친구들의 대부분은 어떤 부자유스러움을 느껴 말레이시아 이외의 나라에 망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 Continue reading 파미 파질에게 물어본 민주주의에 관련한 10가지 질문 (말레이시아)